일본 기업 문화 - 40학년 졸업을 꿈꾸는 일본의 직장인들
일본 기업의 조직 문화, 쉽게 봤다가는 골로 간다
나는 일본에서 2년간의 석사과정을 마치고, 현지의 대기업에 취업하여 9년째 회사생활을 이어나가고 있는, 하지만 현재는 휴직 중인 반백수의 직장인이다.
대학시절 교환학생으로 일본에 온 것을 계기로, 이 나라의 사람들과 문화의 매력에 흠뻑 빠져서 다시 일본으로 오게 되었다.
석사과정을 밟던 시절에는, 연구가 생각대로 진행되지 않아서 2년 내내 마음고생을 많이 했지만, 결국에는 원하던 결과를 내고 논문도 쓰고 무사히 졸업할 수 있게 되었다.
졸업 후에도 그대로 일본에 남아, 제조업 분야의 한 대기업에 취업을 하게 되었다. 내가 배속받은 부서는 연구개발 부문의 한 부서로, 일본에서 내로라하는 유명 대학교의 석사 이상 출신자들로 가득한 곳이었다.
나는 내 인생의 오랜 배움의 시간 끝에 드디어 직장인이 되었다는 생각에, 큰 포부를 가지고 회사생활에 임했다. 처음 2~3년은 적응하는데 꽤나 애를 먹었으나, 점차 적응이 되어갔다.
하지만 5년 차가 넘어갈 무렵부터, 나는 점점 알 수 없는 수렁의 늪으로 빠져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정신력으로만 버티다가 9년 차로 넘어가는 시점에서, 우울증과 공황장애라는 더블 펀치를 맞고, 완전히 넉다운의 상태가 되고 말았다.
지금은 휴직을 하고 1년여 가까운 시간이 흘렀다. 쉬면서 지난날들을 다시 돌아보니, 나 자신은 스스로의 생각과는 다르게, 일본의 조직 문화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한 채, 그저 정신력 하나만으로 버텨온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오랜 시간 일본의 기업에 일을 하면서도 적응하기 힘들었던 부분은 무엇이었을까.
일본 기업은 40학년제의 직장인 양성소와 같다
일본의 전통적인 대기업은, 철저하게 연공서열과 관료주의적인 형태로 조직이 운영된다. 거기에 개인은 존재하지 않고, 조직을 위한 개인의 노력과 희생만이 존재할 뿐이다. 그리고 회사생활은, 학창 시절의 학교생활을 아주 길게 늘여 놓은, 마치 40년짜리 직장인 양성소에 다니는 듯한 느낌마저 든다.
일본 기업들은 신입사원을 채용하면, 그들이 학교에서 배워온 것에 크게 개의치 않고, 자신들의 조직에 맞춰서 모든 것을 다시 재교육시킨다. 심지어 석사, 박사과정을 수료하고 들어온 고급 인재들도 그들의 전공과 전혀 관계없는 부서에 배속시키기도 하며, 회사 업무에 필요한 모든 지식과 돌아가는 방식을 제로에서부터 가르쳐나간다. 요즘은 일본 기업도 직장 문화가 많이 바뀌었다고는 하지만, 뿌리 깊은 연공서열과 정년보장을 전제로 한 인재 육성 방식에는 큰 변함이 없다.
대졸이나 석사 졸업자라면 20대 중반에 취업하는 것이 일반적인데, 대기업 평균 정년퇴직 연령이 65세인 점을 감안하면, 40년이란 세월을 직장에서 보내야 한다. 이렇게 긴 시간의 축을 놓고, 회사는 마치 '너희들을 직장인이라는 번듯한 하나의 인간으로 양성시켜주겠다'는 태도로 이제 막 입사한 신입사원들을 애송이처럼 취급을 한다. 또한 이러한 명분으로 대부분의 일본 기업들은 신입사원의 급여를 아주 싼 가격에 후려친다.
물론 일본의 평균 초봉이 몇십 년째 상승되지 않는 이유에는 경제적인 상황도 얽혀있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다. 잃어버린 10년이라는 경제 침체를 겪으며, 그것에 의해 형성된 절약정신, 조금이라도 싼 것을 추려하려는 행동양식이, 결국에는 잃어버린 30년으로 이어졌으니 말이다. 장기간의 경기 디플레이션도 임금 상승을 방해한 요인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상황에서도 일본인들은, 일본 기업의 연공서열 시스템과, 어느 시점부터 적용되는 높은 급여 상승률이, 젊은 시절의 희생에 대한 보상으로 되돌아온다는 인식들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보상은 최소한 10~15년이라는 시간을 참아내고, 젊은 날의 인생을 회사에 갈아 넣어야만 손에 넣을 수 있다.
실컷 고생하고, 힘들다는 이유로 회사를 관두는 것은, 좀처럼 쉬운 결정이 아니다. 왜냐하면, 조금만 더 참고 기다리면 보상이 기다리고 있는데, 그 보상을 누리지도 못하고 퇴직을 한다는 것은 너무 억울하기 때문이다.
'어떻게든 참고 버티자'
'참고 버티는 것이 미덕이다'
'하지만, 우리는 무작정 참고 버티는 것이 아니다'
'회사 덕분에 나의 사회적 지위도 상승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 길의 끝에는, 이 회사와 일본이라는 나라를 지탱해 온, 훌륭한 국민으로서 인정을 받고 은퇴를 맞이하게 될 것이다'
'이것이 우리들의 삶이자, 우리가 영위할 수 있는 가장 이상적인 삶의 형태이기도 하다'
일본 사회를 지탱하고 있는 것은 이러한 인식을 지닌 직장인들이다. 일본의 95%가 넘는 노동인구가 직장인이라는 통계도 있다.
일본인들은 직장인으로서의 삶에 안정감을 느끼고, 훌륭한 삶이라고 생각한다. 이것이 그들의 마음속 깊이 뿌리를 내리고 있는 인생의 정해진 항로인 것이다.
이러한 인생관 안에서, 조직에 폐를 끼치고 눈에 띄는 행동은 바람직하지 않다. 금욕적이며 감정에 흔들림 없이 몸가짐을 엄격히 하는 모양새(ストイック-스토아학파적 자세)를, 40년이란 긴 시간 동안 유지할 자신이 없다면, 그들의 기업문화에 녹아드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혹시 당신이 일본이라는 나라에서 일할 기회가 주어진다면, 이런 기업의 문화를 받아들이고, 40학년을 마치고 졸업할 때까지 참고 일할 수 있겠는가?
나는 이 물음에 '그렇다'라고 대답할 자신이 없다. 언젠가는 분위기가 다른 회사로 이직을 하건, 경제적으로 자립하여 빠른 퇴직(FIRE)을 하건, 현재로서는 다른 방식으로 제2의 인생을 설계해 나가고 싶은 마음이 절실한 요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