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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부부/부부관계

일본인 여성과 첫 만남에서부터 사귀기까지의 과정 [비망록]

by 후니훈 - Hoonyhoon 2022. 9.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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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를 만나기 전의 나의 상황

- 나도 이제 슬슬 30대 중반을 바라보는 나이가 되었다

나는 일본에서 석사과정을 수료하고, 일본에 그대로 남아 도쿄와 요코하마를 거점으로 하는 한 제조업 분야의 대기업에서 일을 하고 있다.

2017년 봄, 나는 일본에서 흔히 말하는, 1인분의 일을 믿고 맡기고 할 수 있다는 입사 4년 차에 들어섰다. 슬슬 중견사원이 되어가는 과정이라, 산더미처럼 밀려들어오는 일 때문에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내 나이도 어느덧 만으로 32살. 멍 때리고 있다가는 눈 깜짝할 사이에 30대 중반을 넘어가버릴 나이가 되었다. 서글프지만, 나 스스로도 생물학적으로 노화되어가는 느낌을 조금씩 받기 시작한 시점이었다.

어쨌거나 이런 나의 마음을 달래주는 것은 술 밖에 없었다. 슬슬 몸 관리를 해야 할 나이었지만, 아직까지는 늦은 시간이라도 회사에서 돌아오는 길에 선술집에서 들러서 알딸딸해질 때까지 술을 마시며 스트레스를 풀 수 있는 정도의 건강함은 남아있었다. 

 

만남에서 교제를 시작하게 되기까지

2017년 8월

- 단골 선술집에서 알게 된 여성을 통해, 한국에 관심이 많다는 회사동기를 소개받다

회사일을 끝내고 집에 돌아오는 길에 항상 들리던 단골 선술집에서, 예전에 아르바이트를 했던 한 여성을 알게 되었다. 그 여성은 대학교를 졸업하고 이제 막 취업을 한 신입사원이었다. 내가 가는 단골 선술집은 영업이 끝나면 가게 문을 닫고, 단골들과 아르바이트생만 이용할 수 있는 교류의 장으로 바뀌는데, 그 자리에서 금세 친해지게 되었다. 그 이후로도 가끔씩 영업 후의 술파티에 나타나서 조금씩 친분을 쌓아나갔다(참고로 이 여성에게는 보이프렌드가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 여성이 갑자기 자신이 다니는 회사에 한국에 관심이 많은 회사동기가 있다고 말하며, 언젠가 여기서 같이 술자리를 가져보는 게 어떻겠냐고 제안을 해주었다. 

여자를 소개해준다고 하면 눈이 동그랗게 뜨이는 나였기에, 그녀에게 고맙다고 전하며 흔쾌히 그 제안을 받아들였다. 그런데 그 자리에서는, 그 회사동기라는 사람에 대한 상세한 이야기를 전혀 묻지 않았다. 나는 그저 실제로 만나서 그 사람과 많은 이야기를 하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사실 한편으로는 별 기대감은 들지 않았다. 그냥 지나가듯이 술김에 하는 이야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그런데 며칠 뒤에 바로 그녀에게서 연락이 왔다. 우리 모두가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사니깐 언제든지 시간이 낼 수 있다는 것이다. 나는 의외로 적극적으로 자리를 마련해 주려는 그녀의 연락이 기대 밖이었지만 너무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한 여성을 소개해줘서라기 보다는 나라는 인간을 위해서 적극적으로 만남을 주선해주려는 마음이 고마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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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녀와의 첫 만남. 다른 그 무엇보다도 너무나 유창한 한국어 실력에 놀랄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부랴부랴 처음 소개를 받은 자리. 그녀에 대한 첫인상은 조금 부끄럼을 타고, 낯을 가리는 것처럼 보였다. 혹시 사람을 대하는 게 조금 서툰가?라는 인상도 들었던 거 같다. 외모는 예쁘거나 귀여운 것을 떠나서 굉장히 수수한 느낌에 무엇보다도 너무 어려 보여서 놀랐다(실제로 나보다 9살이나 젊은 여성이었다). 집 밖에 나오기 전에 거울에 마주친 내 얼굴이 오늘따라 파삭 늙어 보였는데, 그 모습이 머릿속에 떠올라 그녀에게 미안한 생각마저 들었다.

어쨌든 일단은 술을 한 잔 주문하고 먼저 내 소개를 했다. 나는 한국에서 왔으며, 일본에서 살아온 이력 등에 대해서 아주 간단하게 이야기했다. 그리고 본격적으로 이야기를 나누려고 하는데, 처음에 그녀의 입에서 나오는 말을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왜냐하면, 당연히 일본어를 이야기한다고 생각하고 듣고 있었는데, 다시 들어보니, 뜻밖에도 아주 유창한 한국말로 나에게 말을 걸고 있었기 때문이다. 내가 일본어로 받아쳐도 한국어로 답변이 돌아왔으니, 그때부터 자연스럽게 모든 대화가 한국어로 이루어졌다. 

그녀는 24살의 일본인. 대학교에서의 전공은 언어학이었는데, 필수로 2가지의 제2외국어를 선택해야 했다고 한다. 그녀는 제2외국어로 한국어와 독일어를 선택했고, 여름방학과 겨울방학 때 각각 3개월씩 서울대학교에 교환학생으로 가서 한국어를 배웠다고 했다. 그 덕분에 한국어가 유창해질 수 있었던 것이다. 지금까지 만나본, 한국에 관심이 많다고 자처하는 일본인 여성들은, 대게는 한국 드라마나 K-POP 등의 한국문화를 좋아한다고 이야기하지만, 그녀는 달랐다. 한국 음식은 좋아하지만, K-드라마나 K-POP에는 별로 관심이 없어 보였다. 하지만 서울이라는 도시를 마음에 들어 했고, 특히나 기능적으로 한국어를 유창하게 구사하는 점이 인상 깊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 보니 금세 2시간이 지나가버렸다. 오늘은 첫 만남이었으니 이야기는 그만하고, 서로 LINE 연락처를 교환했다. 나와 그녀를 소개해 준 지인은 남아서, 가게 안의 다른 단골들과 합세하여 계속 술자리를 이어나갔다. 그 와중에 나는 바로 그녀에게 오늘 여러 가지 이야기를 할 수 있어서 좋았다며 LINE 메시지를 보냈다. 그녀의 메시지는 역시나 유창한 한국어로 답변이 돌아왔다. 뭐 일단은 강한 인상을 받았으니 따로 다음을 약속해야 되겠다고 생각하며 그날은 그렇게 마무리를 했다.

 

2017년 9월 ~ 11월

- 그녀와 만남을 이어나가다.

그 후에, 내가 먼저 애프터 신청을 하고, 몇 번이나 같이 밥도 먹고 술도 마시며 좀 더 서로를 확인하는 시간을 가지려고 노력했다. 그녀는 곧 잘 나의 요청에 응답해주어, 계속 만남을 이어나갈 수 있었다. 

 

- 한편으로는, 내가 감히 '교제를 시작해도 될까?'라는 고민을 많이 했다.

나는 그러면서도 많은 생각을 했다. 왜냐하면, 이 여성과는 충분히 교제를 해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만, 한편으로는 나도 슬슬 결혼이라는 것을 고려해야 할 나이가 되었기 때문에, 괜스레 머릿속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지금까지 일본에 와서 나에게 과분할 정도로 좋은 몇몇 여성과 친분을 쌓거나, 교제의 경험도 있었지만, 결혼은 전혀 다른 문제다. 나는 지금까지 결혼이란 걸 상상도 하지 않은 채, 내 나름의 젊음과 인생을 즐기며 살아왔다. 그러므로 결혼이라는 것에 대한 가치관이 전혀 형성되어있지 않았다. 반면에 어느샌가 나이가 들어 생물학적인 열화를 느끼며, 지금 때를 놓치면 결혼이라는 걸 못할 수 있겠다는 위기감을 느끼고 있었다.

나는 그녀와 교제를 고려하는 단계로 넘어가기 전에, 결혼을 전제로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았다. 그래서 나는 '감히' 사귈지 말지를 고민했다. 상대방이 받아줄지 안 받아줄지는 고려도 하지 않은 채로 말이다.

하지만 결론적으로는, 그녀에게 고백하기로 결심을 했다.

내 인생의 지금의 시점에서 이렇게 순진해 보이고, 나보다 10살 가까이나 어린, 그리고 한국어나 한국문화에도 능통한 부분 등이, 그녀와 결혼을 전제로 만남을 계속 이어나가도 되겠다는 이유가 되어주었다.

 

2017년 11월 - 고심 끝에 그녀에게 사귀자고 고백했다. 그녀의 대답은 'YES'

야마나시현의 단풍 풍경
야마나시현 어딘가의 한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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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풍꽃이 한창 피어있던 어느 가을날, 나는 그녀에게 야마나시현에 단풍 구경을 하러 드라이브나 하러 가지 않겠냐고 제안을 했다. 나는 그날 고백할 작정이었으므로, 사전에 어떤 하루를 보낼 것인지 철저히  계획해두었다.

하지만 계획은 생각대로 흘러가지 않았다.

나는 하루 일정을 다 마치고 조금 일찍 돌아와서 함께 저녁식사를 하며, 진지하게 교제를 시작해보자라는 이야기를 꺼낼 작정이었다. 하지만 돌아오는 길에 고속도로가 너무 꽉 막혀서 제시간에 돌아오는 것이 불가능해졌다.

'어떻게 하면 좋을까. 어떻게 하면 좋을까.' 나는 계획이 꼬이자 머릿속을 계속 회전시켰다. 

 

그런데 꽉 막힌 고속도로 한가운데서, 나도 모르게 그녀에게 벌컥 말해버렸다.

"나라는 사람이랑 괜찮다면 사귀어 보지 않을래요?"

'아니, 내 주둥아리가 미쳤나?'

나도 내 입에서 튀어나온 말에 너무 당황했다. 이 고속도로 한가운데서 거절당하면 어떻게 하면 좋단 말인가.

 

하지만, 정말로, 정말로, 정말로, 너무나도 다행히, 그녀의 대답은 'YES'였다.

우리는 당일치기로 여행을 다녀오는 고속도로 한가운데서 교제를 시작하게 된 것이다.


 

원래는 진짜 짤막짤막하게 결혼식을 올리게 된 과정까지 스트레이트로 작성할 예정이었으나, 갑자기 무슨 바람이 들었는지 글이 엄청 길어져버렸다. 이 포스트에서는 첫 만남에서부터 사귀는 과정까지만 서술하고, 다음 포스트에서 결혼식까지 올린 과정을 짧게 요약해서 올려보도록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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