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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생활/일본문화

일본 기업 문화 - 리더는 없고 평론가만 존재한다

by 후니훈 - Hoonyhoon 2022. 9.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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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제조업의 국제 경쟁력 하락의 원흉

일본이 수출 없이 내수경제만으로도 자국을 먹여 살릴 수 있을 정도로 경제 대국이 될 수 있었던 데에는, 기술력과 전통을 겸비한 수많은 제조업 기업들의 뒷받침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은 사정이 다르다. 일본의 산업을 뒷받침하는 이 제조업일수록, 매니지먼트에 무능한 사람들이 경영 일선에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내가 일본의 한 제조업에서 10년 가까이 일하며 느낀 가장 안타까운 점은, 대부분의 관리직들이 매니지먼트에 소질이 없다는 점을 꼽고 싶다. 이 무능한 관리자들이, 일본 기업들의 경쟁력을 떨어뜨리고 있는 것이다.

일본 제조업의 일반적인 관리자들이 매니지먼트에 소질이 없는 이유는, 대부분의 기업들이 관료주의의 경영방식과 연공서열에 의한 인사제도를 채택하고 있는 것이 원인이다.

이 낡은 운영 방식을 탈피하지 못하는 데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는데, 첫 번째는 기술력으로 승부하는 제조업의 특성상, 자사의 기술에 대한 이해가 뛰어나거나 공헌을 많이 한 사람이, 조직을 잘 관리할 수 있을 것이라는 고정관념을 가지고 있다.

또 하나는, 그러한 기술력을 쌓아오기 위해서 오랜 세월의 시간을 통해서 조직문화가 형성되다 보니, 갑작스레 경영방식을 바꾸는데 큰 저항감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일본의 대부분의 제조업들이 공기업과 같은 분위기를 자아내며, 시대의 변화에 따라가지 못하고 뒤쳐지기만 하고 있는 것이다.

 

일본 기업에는 리더는 없고, 평론가만 수두룩하다

한편, 일본 기업들이 국제 경쟁력을 잃어가는 와중에도, 일본 내 유명대학 석박사 이상 출신의 유능한 인재들은, 자국 기업들의 기술력에 자부심을 느끼고, 이들 기업에 취업을 한다. 굳이 해외 기업을 찾지 않아도, 국내에 훌륭한 기술력을 지닌 수많은 기업이 있으므로, 어딘가에는 취업할 수 있는 자리가 있다. 덕분에, 일본의 대졸 이상 학력자의 98% 이상이 취업에 성공한다거나, 심지어 원하는 회사를 골라서 간다는 등의 뉴스가 한국에서 화재가 되기도 한다.

하지만 취업이 잘 되면 뭐하나. 뛰어난 인재도 회사에 입사하여 10여 년 이상 근무를 하고 관리자가 되면, 답답한 관리자로 모습을 탈바꿈한다. 왜냐하면, 그들이 오랜 시간 동안 회사에 다니며 요구되는 것이 기술에 대한 철저한 '장인정신'이지, 자원과 돈 그리고 인재 등의 리소스 등을 관리하는 일을 제대로 배우거나 가르쳐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승진한 관리자들이 할 수 있는 일은, 기술적인 문제에 대한 '지적'뿐이다. 진짜 유능하다고 소문난 관리자는, 그 기술의 문제점을 어떻게 하면 해결할 수 있는지, 감탄사가 나올 정도로 잘 지도해준다.

하지만 문제는 거기까지다. 관리자들이 기술적인 문제점에 대해 전문적인 식견을 가지고, 구체적인 평가와 의견을 내놓는 것 까지는 잘 하지만, 그 기술이 이 회사와, 이 사회에 어떻게 공헌될 수 있는지, 나아가 어떻게 돈과 비즈니스로 연결되는지 전혀 생각하지 못한다.

그리고 일선에서 뛰어난 기술력을 인정받고 관리직이 된 사람들과 직접 이야기를 해 보면, 하나같이 관리자나 리더로서 의사결정을 하지 않고, 마치 평론가처럼 이야기를 한다. 그래서 실제로 피드백을 받기 위해 보고를 하고 상담을 하다 보면, '결국에는 어떻게 하라는 거야?'라는 생각이 들게 만드는 경우가 많다.

또한 사내에서 연구・개발 프로젝트 보고회가 있으면, 이 관리자들은 평론가를 뛰어 넘어서, '근엄한 재판관'이 되어, 권력과 권한을 지닌 자로서의 '판결'을 내린다. 판결이라는 것은 어디까지나 문제점을 꼬집는 데에 불과하며, 미래 지향적인 사고는 완전히 배제되어 있는 것이다.

재판장과도 같은 사내 보고회

 

회사 사장이나 임원진들도 별반 다를 바 없다

더욱 안타까운 점은, 관리직들만 그러한 태도를 취하는 것이 아니다. 회사의 사장을 비롯한 모든 임원들도 비슷하다. 향후 3개년 목표랍시고 전사에 내려오는 공문을 읽어 보면, 재무적인 목표는 구체적으로 재시 되어 있으나, 목표와 수단이 너무 추상적이어서 결국에는 무엇을 하고 싶은지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들이 너무 많다.

요즘 일본 제조업 분야에서 가장 핫한 키워드는 SDGs(Sustainable Development Goals - 지속 가능한 개발 목표)이다. SDGs에는 세계 각국의 정부가 협의를 통해 동의를 구한, 국가적 차원에서 해결해야 할 17가지의 목표가 제시되고 있다. 예를 들어, 우리 회사 사장이 '우리 회사의 기술력을 총동원해서 CO2 발생을 절감시켜, 세계 기후변화에 대처하겠다'라고 선언했다고 치자. 문제는 이 CO2 절감을 위한 구체적인 방법에 대해서는 제대로 언급하지 않는다. 심지어 투자자들을 위한 IR(Investor Relation) 자료에서 조차, CO2 절감에 관한 기술 개발 내용을 두리뭉실하게 제시한다. 그저 우리 회사가 가지고 있는 관련 기술을 나열해서 '우리는 이 만큼의 기술을 가지고 있으니 CO2 절감에 공헌할 수 있다'는 식의 주장만 한다.

물론, '사장들은 보통 다 그렇게 추상적으로 이야기하지 않나?', '구체적인 것은 밑에 달려있는 사업부에서 알아서 할 일 아닌가?'라고 반문할 수도 있다. 

하지만 적어도 돈 잘 버는 회사들의 CEO나 사장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자신들의 비즈니스와 경영방침에 대해서 너무나도 적확하고 명확하게 이야기를 한다.

최근 자율주행 전기차 판매로 일약 세계 제일의 부자가 된, 테슬라의 CEO인 일론 머스크가 하는 이야기를 들어보면 자신의 사업에 대해 방향성(목표)과 수단을 얼마나 명확하게 이야기하는지 알 수가 있다. 일론 머스크가, 유럽 최대의 테슬라 차량 생산 공장이 될, 기가 베를린 공장의 건설 현장에 방문하여,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이야기했다.

나는 하루라도 빨리 세계 각지에 많은 공장들을 완공시켜 전기차 보급에 앞장서고 싶다. 그리고 내연기관차가 내뿜는 탄소가스로부터 지구의 대기오염을 막고, 에너지 문제 해결을 더욱더 앞당기고 싶어 참을 수 없을 지경이다.

 

지금의 일본 기업들이 처한 문제는, 오랜 세월 동안 이어져 온 경제 디플레이션이나 엔저 등의 외부적 상황이 아니다. 

기업을 잘 이끌고 나가줄 수 있는 '진짜 리더의 부재'가 최대의 문제점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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